[소식지] 더불어숲 통(通) 38호_4,5,6/25

<더불어숲 시론>

 

 

 

좌우명 이야기

 

한철희 더불어숲 이사, 돌베개출판사 대표

 

좌우명(座右銘)이라는 게 있습니다. 삶의 지표로 삼거나 자기를 성찰하기 위한 금언이나 경구를 가리킵니다. 저의 좌우명은 사무사(思無邪)’입니다. 그것은 신영복 선생님께서 써주신 글씨 한 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제가 선생님을 처음으로 뵌 것은 1994년 돌베개에서 중국역대시가선집을 출간하면서였습니다. 이 책은 기세춘·신영복 선생님이 공동으로 편역하고, 이구영·김규동 선생님이 감수하셨습니다. 벌써 25년의 세월이 흘러 세 분은 타계하셨고, 기세춘 선생님만이 살아 계십니다.

1993년 겨울 무렵 교정지를 들고 목동의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선생님께서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선생님께서는 아버님을 모시고 계셔서 인사를 드리게 되었는데 저를 후배라고 소개하셨습니다. 그 순간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선생님이 아니라 격의 없이 대할 수 있는 다정한 선배처럼 느껴지면서 첫 만남의 긴장감이나 서먹함이 녹아내렸습니다. 선생님은 이 책의 번역 작업은 물론 서문을 쓰셨고 제호도 써주셨습니다. “사상은 선택이다.”라는 선언적인 첫 문장이 지금도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4권짜리 거질의 세트를 내면서 선생님의 서화 복제본을 독자 사은품으로 제공하기로 하여 휘호를 부탁드렸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써주신 글귀가 사무사(思無邪)’입니다. “思無邪, 생각에 사특함이 없다.” 잘 알다시피, 공자가 논어(論語)위정(爲政)편에서 시경(詩經)의 시들을 평하여 한 말입니다.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공자의 평어를 빌려 중국 한시의 정신을 압축하신 듯합니다.

 

선생님에게서 처음 받은 귀중한 글씨인지라 복제본 제작 후 원본은 잘 표구하여 제 사무실 벽에 걸어두었습니다. 그런데 글귀의 주술적 효과일까요? 가까이에 있으니 매일 보게 되고 또 보면서 그 뜻을 이리저리 해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절로 저의 일상과 출판 활동에 대한 반추로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딱히 좌우명 같은 걸 생각한 적은 없었는데,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니 그 글귀가 마음에 스며든 듯 자연스레 좌우명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옛 사람들이 좌우명을 새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살아갈수록 사무사의 의미는 심중하게 다가옵니다.

 

 

 

*20171()더불어숲이 선생님 1주기 추모 전시회를 열었을 때 이 작품을 전시한 바 있습니다.

:0.0pt 0.0pt 0.0pt 0.0pt;">  

 

*2017상세정보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