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가 만난 인연>
김영덕 화백 _ 신영복 선생님의 은사, <전장의 아이들> 작가
아카이브 팀은 지난 6월 21일 오후, 김영덕 화백과 그 따님 김정은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그 인터뷰 요약을 지난 달에 이어 싣습니다.
(김화백) 신교수는 참 좋은 학생이었어요. 선생들 눈에 진짜 사랑스럽고 슬기롭고 공부 잘하고. 어떻게 알았는지 대학원 간 후에도 가끔 여기를 찾아오더라고. 그 뒤로 (감옥에서 나와서도) 계속 만나기도 하고.
(더불어숲) 갖고 계신 신영복 선생님의 작품과 그와 관련된 사연은 어떤 것이 있으신지요?
(김정은 선생) 저 결혼할 때 주신 <더불어한길>이 있고, <처음처럼>도 있습니다. 여러 작품을 주셨어요. 아버지 안 드리고 다 저에게 주셨는데, 너무 많이 받아서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면 ‘가지고 있다가 아무나 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제가 좀 고지식해요. 제가 다 갖고 있기가 좀 그래서 진짜로 주고 싶은 사람들, 선생님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한테 다 나누어 주었어요.
(김화백) 신영복 교수에게 붓글씨를 가르쳐 준 선생이 있거든. 노촌 이구영 선생이라고. 그분이 나에게 붓글씨를 준다고. 내 이름까지 딱 써 가지고, 저쪽에 있어요. 이것이 이구영 선생 글이구요.
<이구영 선생님 작품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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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백) 이걸 하나씩 드릴까 하는데. 내가 전시회 냈던 그림 중에서 괜찮은 거 6개로 만든 엽서에요. <엽서 사진>
여기는 금강산 관광코스에는 들지 않은 곳인데, 현대아산 쪽에서 특별히 이 자리를 나에게 보여준 거예요. ‘천화대’라고 외금강의 제일가는 경관인데, 1160m 고도. 여기를 북쪽과 남쪽의 안내자들 두 사람씩 붙여서 내가 들어갈 수 있게 허락을 해줬어요. 거기 가서 이 작업을 얻어온 거죠. 내가 직접 현장에서 그린 건 아니고.
(김정은 선생) 스케치도 안 하세요. 사진도 안 찍으시고. 그냥 보고만 오세요. 감각으로. 온 감각으로 담고 기억해서 그리세요.
저는 아버지와 신 교수님이 관계가 있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책으로 먼저 알았어요. 제가 원래 수학전공이었는데 88년 2월에 졸업을 하고 사회학과로 편입해서 학교를 계속 다니고 있었거든요. 여름에 학교 서점에서 엄청 선풍적이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알게 되고, 그 책을 정말 많이 샀어요. 제가 선물을 그 책으로 다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아까 아버지가 말씀하신 1990년 전시회 때 신 선생님을 뵀는데도 그 책의 저자이신 걸 몰랐어요. 그때 기억이 없어요. 나중에야 사진을 보고 알았어요.
그러다가 군대 갔다 온 동기들이 졸업하는 91년에, 서클 기수 모임을 따로 만들면서 의미 있는 일을 모색하다 신영복 선생님을 한번 뵈면 좋겠다고 얘기가 된 거예요. 아버지 통해 연락드려 처음 뵈었어요. 2월에 동기들이 졸업을 하고 3~5월 정도였을 거예요.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고 제가 먼저 뵈었는데 우리 모임에도 나와 주셨어요. 학교 앞 중국집도 오셨고, 산도 같이 가시고 그랬어요.
(더숲) 더불어숲의 원조이시네요.
(김정은 선생) 그 정도로 편하게 대해주셨어요. 친척 아저씨 같은 느낌, 삼촌 같은.
선생님이 1968년 초봄에 저희 집에 오셨대요. 아버지 뵈러 오셨다가 제가 아장아장 걸었던 걸 기억하시더라고요. 감옥 갔다가 나오시니 제가 커 있었잖아요. 선생님께서 느낌이 남달랐던 거 같아요.
예전에 대학 동기들이랑 모여서 신영복 선생님을 뵈었을 때 연애하는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던 기억이 나요. “지금은 여자친구, 남자친구 사귈 때 옆에 데리고 다니면 폼나는 그런 사람만 찾지만 그게 아니라 살다보면 엄마 역할도 해야 하고, 사위, 며느리 등의 역할을 해야 하는데 각각 그 자리에 사람을 한 번 다 놔봐라. 나이 들어가면서 각 자리에서 그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그걸 한 번 생각을 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뵈었던 게 돌아가시기 전 9월, 추석 전 가을에 선생님이 반짝 좋아지셨어요. 오랜만에 뵈러 갔었는데, 전혀 아프신 것 같지 않았어요. 식사자리에서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제 딸이 대학 2학년으로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딸에게 전해주라면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사귀지 말고 내가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을 사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게 좋다고 하셨던 것 같아요. 무언가 깊이가 느껴지고, 정확하게 의미를 알 수는 없지만 주도적인 사랑을 하라는 의미로 여겨졌어요.
(더숲) 신영복 선생님께서 그림을 자연스럽게 잘 그리시는 것은 김영덕 선생님께 사사받은 덕인 것으로 알겠습니다. 저희에게도 그림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있으면 그림으로 표현하라고 하셨거든요.
(김화백) 불교에서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하는 것처럼 그림이라는 것이 감각, 감성이 많이 작용하는 영역이니까, 언어적 표현으로 도저히 안 되는 미묘한 감성의 세계가 있거든요. 그것이 그림에서는 가능한 것이지요. 무언가 표현할 때에 문장적 표현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하는 경우, 언어 그 이상의 의미가 함축되어 담기는 것이지요.
그 후로도 남북문제와 통일에 대해 경제적 이득에서 문화적 성취, 세계 평화에 대한 기여까지 평소 생각을 거침없이 말씀해주셨습니다. 더 많은 이야기는 아카이브에 담아 만나 뵙겠습니다.
mso-text-raise:0.0pt;">. 그것이 그림에서는 가능한 것이지요. 무언가 표현할 때에 문장적 표현으로는 도저히 안 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서 표현하는 경우, 언어 그 이상의 의미가 함축되어 담기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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